왕도 두려워한 저승의 왕: 조선 왕실의 염라대왕 관련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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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는 하늘의 명을 받든 조선의 왕들도 두려워했던 존재, 저승의 왕 염라대왕. 세종대왕의 궁궐에 나타난 저승사자의 실화부터, 숙종의 꿈에 나타난 염라대왕의 경고까지. 역사 기록에 남겨진 왕실과 저승의 왕 사이 숨겨진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드립니다. 왕들도 피할 수 없었던 죽음 앞에서의 두려움과 인간적 면모, 그리고 당시 사람들의 사후세계관이 담긴 놀라운 실화를 통해 조선 왕실의 또 다른 비밀을 만나보세요.
※ 세종의 방문객, 학자 김상직과 조정 관리 이충이 나누는 세종대왕 시절 궁궐에 나타난 저승사자 이야기
"이 비는 언제 그칠 것인가... 이제 사흘째 계속되는구려."
학자 김상직은 창가에 앉아 빗줄기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앞에는 조정의 중견 관리 이충이 앉아 있었다.
"비가 그치길 기다리다간 밤이 깊어질 것이오. 그나저나 이번에 올린 상소문은 어떻게 되었소?"
김상직이 미간을 찌푸리며 술잔을 비웠다.
"세상이 다 알다시피 전하께서 편찮으시니... 상소를 올려도 소용이 없을 것이오."
이충은 잠시 침묵했다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전하의 병환이 심하다고들 하던데, 사실인가요?"
"아마도... 다들 모르는 척하지만, 염라대왕이 곧 부르실 것이라는 소문도 있소."
김상직의 말에 이충은 화들짝 놀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쉿! 그런 말씀 함부로 하시면 안 됩니다. 그 이름만 들어도 불길한데..."
김상직이 짙은 미소를 지으며 술을 한 잔 더 따랐다.
"이 사람, 그렇게 겁이 많소? 우리 세종대왕께서도 저승의 왕을 두려워하셨을까..."
"전하께서도 사람이시니 두려우셨겠지요. 특히... 그 일이 있으신 후로는..."
"그 일이라니?"
이충은 주변을 다시 한번 살피고 목소리를 더욱 낮추었다.
"십여 년 전, 세종 스물아홉 해였던가... 궁궐에 저승사자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소?"
김상직은 눈을 크게 뜨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처음 듣는 이야기요! 어서 들려주시오."
"제가 젊은 시절 궁에서 근무할 때의 일입니다. 어느 겨울 밤, 전하께서 밤늦도록 집현전에서 학자들과 논의를 하고 계셨지요. 갑자기 차디찬 바람이 불더니... 검은 옷을 입은 낯선 노인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궁궐에 어찌 낯선 이가 들어올 수 있었단 말이오?"
"그게 이상한 점이지요. 경비도, 내관도 아무도 그를 본 적이 없었답니다. 그런데 그 노인, 전하께 다가가 '세종 이도, 너의 수명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김상직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어찌 되었소?"
"전하께서는 '네가 누구냐'고 물으셨고, 그 노인은 '나는 염라의 사자'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네가 백성을 위한 좋은 일을 많이 했으니 수명을 조금 더 연장해주마'라고..."
"설마요! 그런 일이 정말 있었단 말입니까?"
"옆에 있던 학자들이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노인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고 합니다. 마치 안개처럼..."
이충의 이야기에 김상직은 몸을 떨었다.
"그 후로 어떻게 되었소?"
"전하께서는 그 일 이후 불경을 가까이 하시고, 더욱 열심히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셨지요. 한글을 창제하신 것도 그 무렵이라고 합니다. 마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아시고 서두르신 것처럼요."
김상직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래서 세종대왕께서 저승의 왕을 두려워하셨다는 말씀이시군요..."
"두려움이라기보다... 존경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승의 왕이라도 저승의 왕 앞에서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니까요."
빗소리가 점점 거세지는 가운데, 두 사람은 침묵 속에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
※ 염라대왕의 부름, 죽음을 앞둔 세종대왕이 염라대왕에 대해 대화하는 장면
세종대왕은 병석에 누워 있었다. 숨소리가 거칠고, 안색이 창백했다. 침소 한쪽에는 그의 오랜 측근인 황효원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효원아... 창밖이 어떠하더냐?"
세종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지만, 여전히 위엄이 느껴졌다.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전하. 올겨울 들어 가장 아름다운 설경입니다."
"눈이라... 내 눈으로 다시 볼 수 있을까..."
황효원은 말문이 막혔다. 현명한 임금의 죽음이 눈앞에 다가온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전하, 어의가 말하기를 곧 차도가 있으실 거라 했습니다. 너무 염려 마십시오."
세종은 희미하게 웃었다.
"효원아, 나와 그렇게 오래 함께했으면서... 아직도 임금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구나."
"전하..."
"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 어제 밤... 꿈에서 그분을 뵈었다."
황효원의 눈이 커졌다.
"누구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세종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앉으려 했고, 황효원이 재빨리 다가가 부축했다.
"저승의 왕... 염라대왕이시다."
황효원은 숨을 들이켰다. 조선 최고의 임금이자 현명한 군주가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꿈에서... 그분은 어떤 모습이셨습니까?"
세종의 눈빛이 멀리 무언가를 바라보는 듯했다.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다. 위엄 있고 공정해 보이는 노인의 모습이었지... 마치 내 할아버지 태조 전하를 뵙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분이... 전하께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세종은 잠시 침묵했다가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도야, 너는 백성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 약속대로 수명을 연장해주었으나, 이제 때가 되었다'고 하시더구나."
"약속이라니요?"
"그래... 십 년 전 그분의 사자가 나를 찾아왔을 때의 약속이다. 네가 너무 어렸을 때라 모를 것이다."
황효원은 어렴풋이 궁중에 떠돌던 소문을 기억해냈다.
"전하, 설마 그때 그 검은 노인 이야기가..."
"사실이다. 그날 밤, 저승에서 사자가 와서 내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지. 하지만 백성을 위한 정치를 했으니 십 년을 더 주겠다고..."
세종의 목소리가 떨렸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이제 다 되었구나. 꿈속에서 염라대왕은 내가 한글을 만들고, 과학을 발전시키고, 백성을 사랑한 것을 높이 평가하셨다. 하지만..."
"하지만 무엇입니까, 전하?"
"나도 많은 죄를 지었다. 형인 양녕대군을 폐하고 즉위한 것, 세자를 너무 엄하게 다룬 것... 염라전에서 심판받을 일들이 많구나."
황효원은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전하께서는 조선 최고의 임금이십니다. 백성들은 모두 전하를 사랑합니다."
세종은 창밖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승의 왕이라도... 저승에 가면 평범한 영혼일 뿐이다. 염라대왕 앞에서는 모든 것이 명명백백히 드러나게 되지..."
갑자기 바람이 세게 불어 창문이 흔들렸다. 촛불이 꺼질 듯 흔들리다 다시 밝아졌다.
"효원아, 내가 죽거든... 백성들에게 내가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전해다오. 저승에 가서도 조선의 평안을 빌겠다고..."
"전하... 제발 그런 말씀 마십시오. 아직 전하께서는..."
세종은 황효원의 말을 손짓으로 막았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 염라대왕 앞에서는 왕도 백성도 다를 것 없다. 다만... 내가 조금 더 많은 일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구나."
눈이 내리는 소리만이 방 안을 채우는 가운데, 위대한 임금은 자신의 죽음을 고요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 숙종의 꿈, 무당 김씨와 내관이 나누는 숙종의 꿈에 나타난 염라대왕 이야기
"김씨, 정말 전하께서 그런 꿈을 꾸셨다는 말인가?"
내관 최상길은 방 한쪽에 조심스레 앉아 무당 김씨를 바라보았다. 푸른 가사를 입은 김씨는 나이가 지긋한 무당으로, 궁중의 여러 의례를 담당하는 이였다.
"그렇다네, 최 상궁. 전하께서 친히 나를 부르시어 꿈 이야기를 하셨으니..."
김씨는 목소리를 낮추고 주변을 살폈다.
"삼 일 전, 전하께서 한밤중에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나셨다지? 그날 꿈에 염라대왕이 나타나셨다고 하셨네."
최상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세상에... 그게 사실이라면 큰일이 아닌가? 전하께 무슨 불길한 일이..."
"참으게. 내 말을 끝까지 들어보게."
김씨는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전하의 꿈에서 염라대왕은 붉은 관복을 입고 높은 전각에 앉아 계셨다고 해. 전하께서 그 앞에 무릎 꿇고 앉자, 염라대왕이 책 한 권을 펼치시더랍니다."
"무슨 책이었소?"
"죄업을 기록한 책이었지. 전하께서는 그 책에 자신의 이름이 쓰여 있는 것을 보셨다고 하네. '이 책에 네 이름이 있으니, 너는 곧 저승으로 올 것이다'라고 염라대왕이 말씀하셨다고."
최상길은 놀라서 입을 막았다.
"아이고... 전하께서 얼마나 놀라셨을까. 그래서 어찌 되었소?"
"전하께서 두려움에 떨며 '제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리 일찍 저승으로 불리는 것입니까'라고 여쭈셨다네. 그러자 염라대왕이 말씀하시길..."
김씨는 한숨을 쉬고 계속했다.
"'너는 장희빈을 무고하게 죽이고, 많은 신하를 유배 보내고, 백성의 고통을 외면했다. 이제 그 대가를 치를 시간이 왔다'고 하셨다지."
"그랬군요..."
최상길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숙종은 장희빈을 사약으로 처형하고, 정치적 반대파를 가혹하게 다루었던 임금이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그 다음이네. 전하께서 무릎을 꿇고 간절히 용서를 빌었다고 해. '제게 기회를 한 번만 더 주신다면, 선정을 베풀고 백성을 잘 보살피겠습니다'라고."
"그래서 염라대왕의 대답은?"
"염라대왕이 잠시 생각하시더니 '그럼 세 가지 조건을 내겠다. 첫째, 무고한 사람을 죽이지 말 것. 둘째, 궁에 불당을 짓고 매일 불경을 읽을 것. 셋째, 굶주린 백성에게 쌀을 나눠줄 것. 이 세 가지를 지키면 3년의 시간을 더 주겠다'고 하셨다네."
최상길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래서 전하께서 요즘 갑자기 불경을 가까이 하시고, 형벌을 줄이시고, 창고의 쌀을 풀어 백성을 구제하라 명하신 것이었군요."
"그렇지. 꿈이라고는 하나, 전하께서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신 게지. 저승의 왕 앞에서는 이승의 왕도 두려울 수밖에 없지 않겠나."
최상길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김씨는 어떻게 생각하오? 정말 염라대왕이 전하를 부르러 오실까요?"
김씨는 깊은 눈빛으로 최상길을 바라보았다.
"내 생각에는... 꿈이 아니었을 수도 있네. 어쩌면 저승에서 정말 사자가 와서 전하의 꿈에 나타난 것일 수도 있지. 전하께서 어떤 선택을 하시냐에 따라 운명이 바뀔 테니..."
방 밖에서 갑자기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등불이 흔들리며 두 사람의 그림자가 벽에 춤을 추었다.
"아무튼 전하께서 이 일을 극비에 부치라 하셨으니, 다른 이에게 발설해선 안 되네. 우리 둘만의 비밀로 간직하세."
"물론이지요. 하지만... 이 일이 사실이라면, 전하께서는 앞으로 더 많은 선정을 베푸실 것이고... 어쩌면 그것이 백성에겐 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김씨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되면 좋겠지.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시간이 지나면 두려움도 잊기 마련이야. 전하께서 그 약속을 끝까지 지키실지는..."
두 사람은 무거운 침묵 속에 깊은 생각에 잠겼다. 멀리서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 영조의 저승길, 역관 박씨와 그의 친구가 나누는 영조의 저승관련 비밀의례 이야기
"박 형님, 이거 정말 비밀로 해주셔야 합니다. 제가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일이니까요."
역관 박홍규와 그의 친구 민석은 어두운 골목에 숨어 소곤거리고 있었다. 민석은 궁중에서 일하는 하급 관리로, 평소에는 입이 무거웠지만 오늘은 술기운에 평소 말하지 않던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그래, 내 입이 무겁다는 건 네가 잘 알지 않느냐. 어서 말해보거라. 대체 무슨 일인데 그리 비밀스러운 것이냐?"
민석은 주변을 다시 한번 살핀 후 목소리를 더 낮췄다.
"지난달 영조 전하께서 병환이 위중하셨을 때 일입니다. 제가 전하의 침소 근처에서 당직을 섰는데..."
"그래, 그래서?"
"밤중에 의원도 아닌 낯선 도사 한 명이 전하의 침소로 들어가더군요. 그것도 아무도 모르게..."
박홍규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도사라고? 영조 전하께서 도사를 불러들이셨다고? 유교를 숭상하시는 전하께서?"
"그게 말입니다... 그 도사, 저승길 안내자라고 하더군요."
"저승길 안내자? 그게 무슨 말이냐?"
민석은 잔에 남은 술을 단숨에 마시고 용기를 내어 말을 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저승으로 가는 길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길을 미리 알아두면 죽은 후에 헤매지 않고 바로 염라대왕 앞에 나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도사는 그 길을 아는 사람이었어요."
"허어, 그런 미신을... 영조 전하께서 믿으셨단 말이냐?"
"전하께서도 처음에는 미신이라며 손사래를 치셨다고 해요. 하지만 병세가 악화되면서... 마음이 바뀌신 모양입니다."
박홍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역시 죽음 앞에서는 임금도 평범한 사람과 다름없구나. 그래서 그 도사가 뭘 했는데?"
"도사는 전하께 일종의 지도를 그려드렸다고 합니다. 저승으로 가는 길의 지도요. 그리고 특별한 주문도 가르쳐드렸다고 해요. 저승사자를 만났을 때 외워야 할 주문이라나..."
"세상에, 그런 일이 있었다니. 그런데 네가 어떻게 그런 비밀스러운 일을 알게 된 거냐?"
민석은 쓴웃음을 지었다.
"제가 그날 밤 당직이었으니까요. 도사가 나오면서 실수로 문을 열어두었는데... 전하와 도사의 대화가 들렸습니다."
"무슨 대화였는데?"
"전하께서 물으셨어요. '내가 평생 많은 일을 했는데, 염라대왕이 나를 어떻게 심판할 것 같으냐'고요. 그러자 도사가 대답하길..."
민석은 잠시 머뭇거리다 계속했다.
"'전하께서는 사도세자를 죽게 하셨으니, 염라전에서 그 일로 큰 벌을 받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백성을 위한 선정도 많이 베푸셨으니, 그것으로 죄를 조금 상쇄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박홍규는 충격을 받은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사도세자의 비극적 죽음은 영조의 가장 큰 상처였다.
"그 말을 들으신 전하께서는 어떤 반응을 보이셨냐?"
"전하께서... 우셨습니다. '내 아들을 저승에서라도 만나 용서를 빌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두 사람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 후로 전하께서는 매일 밤 그 주문을 외우신다고 합니다. 저승길 안내도를 베개 밑에 두고 주무신다는 소문도 있고요."
"영조 전하... 평생 엄격하고 냉정하게 나라를 다스리셨지만, 결국 가장 두려워하신 것은 아들 앞에 서는 순간이었을 게야."
민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 저는 그날 전하의 눈물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이승의 왕이라도 저승의 왕 앞에서는 두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부자간의 정은 죽음을 넘어서도 이어진다는 것을..."
살랑거리는 밤바람이 두 사람의 말을 어둠 속으로 실어갔다. 멀리서 밤 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 정조와 마마신, 정조의 시신을 수습하는 내관들 사이에서 나오는 염라대왕과 마마신의 관계
"몸에 이런 흔적이 있을 줄이야... 역시 소문대로였군."
내관 정수봉은 정조의 시신을 수습하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곁에는 오랜 친구이자 의관인 김이현이 서 있었다.
"무슨 흔적을 말하는 거요? 자세히 말해보시오."
정수봉은 주변을 살피며 목소리를 더 낮추었다.
"여기... 전하의 목에 보이는 붉은 자국 말이오. 마치 누군가 손으로 목을 조른 것 같은 흔적이..."
김이현은 몸을 숙여 자세히 살폈다.
"이런... 정말 그러하군. 이건 마마의 흔적이 아니야. 그럼 소문이 사실이었단 말인가?"
"어떤 소문 말이오?"
정수봉이 김이현의 팔을 잡았다.
"정말 모르시오? 전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궁궐에 나타났다는 이야기 말이오. 그가 바로..."
"저승사자라는 말이오?"
김이현이 끄덕였다.
"헌데 그게 어찌 마마신과 관련이 있단 말이오?"
김이현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우리 전통에서 천연두는 단순한 병이 아니라 마마신이 내린 재앙으로 여겨왔소. 그리고 마마신은..."
"염라대왕의 명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지요."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침묵했다.
"전하께서 평소 염라대왕을 두려워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소?"
정수봉이 물었다.
"그럼요. 선왕이신 영조 전하께서 돌아가실 때, 정조 전하께서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한 때문에 저승에서 벌을 받을까 매우 두려워하셨다고 해요."
"그래서 그런지... 전하께서는 생전에 무덤 자리를 여러 번 바꾸셨다고 하더군요. 마치 저승사자를 피하려는 듯이..."
김이현은 정조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다가 아니오. 전하께서는 밀서를 통해 당시 유명한 도사 최천관을 불러들이셨소. 저승길과 염라대왕 앞에서 자신을 변호할 말을 준비하셨다고 해요."
"변호라니요?"
"네. 전하께서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해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것을 염라대왕께 직접 설명하고 싶어 하셨다고 해요. 영조 전하가 사도세자를 죽게 한 것이지, 자신은 아버지의 원한을 풀어드리려 노력했다고..."
정수봉은 놀란 표정으로 정조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결국 마마신이, 아니 염라대왕의 사자가 전하를 데려갔군요."
"그렇소.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김이현이 정조의 베개 밑에서 조심스럽게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이것이오. 전하께서 직접 쓰신 편지요. 염라대왕께 보내는..."
정수봉은 놀라서 종이를 바라보았다.
"읽어보시오."
"염라대왕 전하께... 신은 조선의 스물두 번째 임금 정조입니다. 신이 이승을 떠나기 전, 한 가지 간청이 있습니다. 저승에서 아버지 사도세자를 만나게 해주십시오. 제가 이승에서 풀지 못한 아버지의 원한을 저승에서는 풀어드리고 싶습니다..."
정수봉의 목소리가 떨렸다.
"전하... 마지막까지 아버지를 생각하셨군요."
"그렇소. 정조 전하께서는 염라대왕조차도 자신의 효심을 알아줄 것이라 믿으셨던 거요."
두 사람은 침묵 속에서 정조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방 안에 갑자기 한줄기 바람이 스쳐 지나가며 등불을 흔들었다.
"자, 이제 시신을 정리하고 염습을 시작하세. 곧 새벽이 밝을 테니..."
"그래요. 그리고 이 편지는..."
"전하와 함께 묻어드리세. 이 편지가 염라대왕께 전달되기를 기도하며..."
두 사람은 깊은 경의를 담아 정조의 시신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새벽이 희미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 마지막 임금의 두려움, 고종의 측근들이 나누는 마지막 임금의 죽음과 염라대왕에 대한 이야기
"그래, 임금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며칠 동안 계속 그 말씀만 하셨다지?"
노학자 김병학과 전직 내관 한응수는 오랜 친구 사이였다. 두 사람은 고종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지켜본 이들이었다.
"그렇소. '염라대왕이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을 계속 중얼거리셨지요. 마치 누군가가 늘 옆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불안해하셨어요."
한응수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무엇이 그토록 고종 전하를 두렵게 했을까?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것인가, 아니면 민비의 죽음인가..."
김병학이 깊은 생각에 잠겼다.
"아마도 모든 것이겠지요. 마지막 순간까지 전하께서는 '내가 무능했다. 염라전에서 조선의 모든 조상과 백성들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라고 한탄하셨으니까요."
"고종 전하께서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 독살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한응수는 주변을 살피고 목소리를 더 낮추었다.
"진실은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 제가 직접 목격한 일이 있소..."
"무슨 일인데?"
"밤중에 전하의 침소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방 안에 차가운 기운이 감돌더군요. 그리고 전하께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어요."
김병학의 눈이 커졌다.
"누구와 대화를...?"
"들어보니 전하께서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애원하는 목소리였어요. 하지만 대답하는 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죠."
"설마..."
"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저승에서 사자가 오신 게 아닐까..."
김병학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선의 마지막 임금께서 저승의 왕과 마지막 대화를 나누셨다니..."
"그뿐만이 아닙니다. 전하께서는 평소에도 꿈 이야기를 자주 하셨어요. 특히 역대 조선의 왕들이 나타나 책망하는 꿈을..."
"그분들께서 무엇이라 책망하셨다고?"
"'왜 우리가 피와 땀으로 지킨 나라를 네가 내주었느냐'라고요. 태조 할아버지부터 순조, 철종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꿈의 마지막에는 항상 염라대왕이 나타나 '네 죄를 어찌할 것인가'라고 물으셨다고 합니다."
두 노인은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조선의 왕들은 모두 염라대왕을 의식하며 살아왔던 것 같소. 세종대왕도, 영조도, 정조도... 그리고 마지막 고종까지."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요. 이승에서는 최고의 권력자였지만, 저승에 가면 평범한 영혼에 불과하니까요. 오히려 더 무거운 책임을 느끼셨을 테고..."
한응수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허나 제가 생각하기에... 고종 전하께서 가장 두려워하신 것은 염라대왕의 심판이 아니라, 자신의 선조들과 백성들을 만나는 순간이었을 겁니다."
"무슨 뜻이오?"
"자신이 지키지 못한 나라, 보호하지 못한 백성들... 그들 앞에 서는 것이 가장 두려우셨을 거란 말이오. 염라대왕보다 더."
김병학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조선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소. 하지만 우리 왕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이 두려워했던 저승의 왕 이야기는 계속 전해질 것이오."
"그래야 합니다. 우리 후손들이 알아야 할 역사니까요. 이승의 권력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결국 모든 이가 염라대왕 앞에 서게 된다는 진리를..."
두 노인의 조용한 대화는 겨울밤의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조선의 마지막 왕과 함께 사라진 시대의 이야기, 그리고 어떤 권력자도 피할 수 없는 저승의 왕 이야기는 이렇게 남겨졌다.
유튜브 엔딩멘트
지금까지 "왕도 두려워한 저승의 왕: 조선 왕실의 염라대왕 관련 기록"을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승에서 최고의 권력을 가진 조선의 왕들도 피할 수 없었던 죽음과 심판 앞에서 인간으로서의 두려움, 후회, 그리고 희망을 품었다는 사실이 여러분께 어떻게 다가왔나요? 그들의 이야기는 권력의 한계와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음 영상에서는 "조선의 무당이 그린 저승 지도"를 통해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사후 세계를 인식하고 준비했는지 더 깊이 탐구해 보겠습니다. 무속 신앙에 담긴 저승관과 실제 무당들이 그린 저승 지도의 의미까지,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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